옛날에 ‘이제 담배 좀 끊어야되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으면 항상 나와 함께 입을 맞추고 핏대를 세우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괴롭거나 슬플 때나, 항상 옆에 있어준 건 담배뿐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그 친구나 나나 담배에 대한 지조는 여전하다. 물론 예전처럼 “식후불연이면 삼초즉사”를 신봉하고, 담배를 안 태우면 화장실에 가서도 “ㄸ”이 안나오고, 군대에서 행군하다 10분간 휴식할 때 “담배 일발 장전”하지 않으면 걸음이 안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금연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며 꿋꿋이 버텨가고 있다. ^^;
애연가를 자처하는 나였지만, 그렇다고 금연을 생각한 적이 없던 것도 아니다.

2004년 금연, 실패 -_-
제대로 한번 끊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2004년에 홈피에 올렸던 사진이다. 아무래도 금연 사실을 여럿에게 공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길래 큰맘 먹고 “금연 Start!”를 선언했는데…
이틀이나 갔을까. 실패. -_-
가끔 담배가 화제거리가 될때면, 지금도 이 사진을 기억하며 ‘그때는 정말 끊을거라고 생각했었다’며 웃는 사람이 있다. ㅋ~
절대 끊을 것 같지 않던 그 친구도 결혼 2년차쯤 되었을 때인가 금연을 시작했었는데, 결국 개발 막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래서 그 친구, 아직도 만나고 있다. 금연에 성공했더라면 아마도 “절교”했을지도 모른다. “담배 끊는 넘 하고는 상종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만, 농담은 접고… ^^;;
갈수록 흡연자의 입지도 좁아지고, 나이도 먹어가고, 무엇보다 가족을 책임져야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 몸 좀 추스려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간절해지고 있다. 최소한 당장의 금연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줄여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사실, 갑자기 담배 얘기를 한 것은 문득 생각난 한 편의 시(詩) 때문이다. 제목이 “담배”이다.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來歷)을 잊어버린 옛 시절(時節)에
났다가 새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煙氣),
다만 타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아마도 이 시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수록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으로 생각된다.
오래된 얘기지만 가끔은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무심히 바라보며 이 시를 떠올리고는 했었다. 아니, 시를 생각하다가 담배를 물었던가? ^^;
흡연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번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 않을까. 우울한 날 계단에 가만히 걸터 앉아 담배 한대 하노라면, 햇빛 좋은 하늘 위로 파랗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보며 왠지 차분해지고 기분좋아 지는 느낌. 담배 경험이 없던 사람이라면 화사한 봄날 풀밭에 앉아 피어오르는 아지랭이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 내가 미친걸까?! ㅋ~
아무튼 담배 연기엔 묘한 매력이 있다. 금연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연기가 좋아 끊지 못한다”가 정말 이유아닌 이유가 될 수 있다. ^^
신세가 담배에 감정이입된 것일까? 김소월은 타들어가며 흩어지는 공허한 연기 속에 쓸쓸하고 괴로운 마음을 모두 담아 날려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ps) 어찌됐건, 금연이 최고다. 끊어야 하는데… ^^;
7 comments
Dizzy
2008/10/21 at 1:16 pm (UTC 9) Link to this comment
그렇군요..감정 이입..
아마 재를 남기고 연기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그런 감정 이입이겠지요^^
박경서
2008/10/21 at 2:46 pm (UTC 9) Link to this comment
네, 그럴 수도 있겠지요. ^^
댓글 다신 것 보고 잠깐 생각해봤는데요, 제 멋대로의 생각입니다만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
(원래 시는 제 멋대로, 맛대로 느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Dizzy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언제인지도 알 수는 없는 옛날, 새없이(뭔가를 해볼 사이도 없이) 살다가 묻힌 아씨님은
그저 짧고 덧없는 삶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아씨 무덤의 분신 같은 풀로 만들었으니
담배 역시 그러한 삶의 의미를 담고 있겠지요.
짧은 담배가 다 타버리면 불꽃이 사라지듯이,
인생의 불꽃 역시 잠시 탔다가 없어지는 것이구요.
그 담배를 부르기를, 내 긴 한숨을 함께 하는 ‘동무’라고 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감정이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
또한 그저 허공에 사라지고 말 연기처럼,
지금의 한없이 괴로운 마음 또한 그렇게 과거 속에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
박경서
2008/10/21 at 4:16 pm (UTC 9) Link to this comment
http://mylib.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ksm&no=4703&sno=55560&n=26
김소월은 「담배」라는 시를 쓴 적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가신 님 무덤 가에서 자라난 풀이라고 하였다. 애타게 사모하는 사랑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미 떠난 님, 그 님은 무덤 속에 있다. 영원히 완성시키지 못할 사랑에 대해 그는 「초혼」 같은 애절한 시에서 썼다. 타들어가는 상사(相思)의 마음에 대해 노래한 많은 민요들이 있었다. 그 전통 위에 김소월의 「담배」는 있다.
신범순(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이라는 분이 이렇다네요… ^^
남윤혁
2008/10/22 at 7:36 am (UTC 9) Link to this comment
앗 이 사진은…. ㅋ
옛추억에 빠져드는군요! ㅎㅎ
어서 금연하3~~~!!
박경서
2008/10/22 at 7:43 am (UTC 9) Link to this comment
금연 계획중이네… ^^)v
언제나 계획만 해서 문제지만…
메아리
2008/10/25 at 4:40 am (UTC 9) Link to this comment
김소월의 시 인상깊은데요.
몸에 좋은 담배가 있으면 걱정이 없을텐데 말이죠
Mr.朴
2008/10/26 at 1:02 pm (UTC 9) Link to this comment
글게요… ^^
다른 건 다 만들어 내는데 몸에 좋은 담배는 왜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