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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엔 전날 챙겨두었던 몇가지 짐들과 카메라 가방을 싣고는 부랴부랴 이른 아침부터 차를 내달렸다. 월곡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아버지를 태우고, 고향 예천을 향해 성묘길에 올랐다.

양궁으로도 유명한 예천은 9살이 나던 해까지 나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향긋한 봄날에 누나 손잡고 호미 들고 나물 캐러 다니던 기억, 뜨거운 여름에 냇물에서 벌거벗고 미꾸라지며 물고기 잡는다고 밥 때 지나도록 놀던 기억, 가을이 되면 빨간 홍시가 주렁주렁 했던 할머니 집 감나무, 겨울이 되면 집 앞 논에서 얼음에 뒹굴어가며 온몸이 다 젖도록 썰매 타던 기억들...

외갓집에서 누나, 형들과 입 언저리가 까맣게 되도록 구워먹던 콩 냄새며, 지금 생각하면 꾸물꾸물 징그럽기 그지없는 누에를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놀았던 누에 치던 방안에는 뽕잎 냄새가 가득했고, 한겨울 외양간 여물통(구유?!)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푹 삶은 짚 냄새며, 집 뒷편 5월의 싱그러운 언덕의 아카시아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 같던 아카시아 꽃을 통째로 따다 입에 넣고 줄기만 쭉 땡겨내어 먹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입안 가득히 퍼지던 아카시아 향이 나는 듯 하다.

9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에게 남아 있는 기억의 단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과 같다. 사실, 가끔은 머리에 떠오르는 단상들이 왜곡되지 않은 실체가 맞을까 싶은 의심스러운 기억들도 있다. 모든 것들을 제대로 기억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작심하고 가져간 카메라였지만, 성묘가 끝나고 돌아갈 길을 걱정하니, 여유가 없어졌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가며, 가능한 사진으로 담아오리라 하였지만, 결국 쫓기듯이 예천국민학교(현재는 물론 예천초등학교)와 예천교와 예천역(경북선)에서 뻗어나온 철로가 가로지르는 강변에서 몇 컷 찍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같아서는 좀더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울로 핸들을 틀었다.

초코파이 정 CF 시리즈 중에서 1991년에 선보였던 "전학가는 날" 편이 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가끔씩 그 CF를 볼때면, 채 2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서울로 전학 오던 그날이 아른거렸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기억이 맞다면 풍채가 넉넉하고 인상좋은 교감 선생님이셨는데, 책가방을 둘러매고 교실문을 나서는 나를 위해 반 애들 모두를 데리고 나와서 배웅을 해주었다.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설 때 까지 모두들 내내 손을 흔들어 주었던 것 같다.

나는 헤어짐이란 익숙하지 않은 감정을 느끼며 서울이란 낯선 세상으로의 여행을 시작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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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2학년 때 교실은 아마도 사진에서 건물의 맨 왼쪽 아니면 바로 윗층 교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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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로 둘러싼 모래판과 철봉들이 예전 모습 그대로인 듯 하다. 사진은 안올렸지만 교문 앞의 큰 나무와 놀이기구들도 여전히 제모습인 것 같다. 반면에 학교도 많이 확장된 듯 하다. 운동장을 둘러싸고 건물이 둘, 셋은 더 생긴 것 같다.

아래는 낙동강 상류인 한천(아마도)의 모습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연결된다. 예천교 아래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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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강둑을 정비하여 주변이 잘 포장되고 도로가 나 있지만, 어린 시절엔 그곳까지도 넓은 모래밭과 잡풀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 엄마들은 물가에서 빨래 방망이를 두둘기고 우리들은 사내애며 여자애며 할 것 없이 빨개벗고 놀곤 했다. 물도 맑고 물고기도 많았다.

미꾸라지도 많이 잡곤 했었는데 기억나는 것이, 미꾸라지를 잡을 때는 물밑 모랫속에서 모가지만 내밀고 있는 놈을 양손을 벌려 가만히 다가간 다음 주변의 모래와 함께 싸잡으면 잘 잡혔다. 이름을 몰라 그렇지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많았다. 특히, 예천교 다리 밑이나 강가 수풀 쪽에는 꽤 큰 붕어들도 많이 있었는데 아버지, 삼촌이 잡은 붕어들로 매운탕을 끓여 먹은 기억도 난다.

아래는 예천역에서부터 강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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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각목에 철사를 대거나 스케이트날을 박고 다시 판자에 각목을 박아 만든 썰매들을 많이 탓었는데, 얼음을 찍어 썰매를 지치는 지팡이에 박을 대못을 만들기 위해 기찻길을 이용한 기억이 어른어른한다. 철로에 대못을 얹어 놓고 기차가 지나가면 대못의 머리가 납작해지는데, 그것을 썰매 지팡이에 박아서 썼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것들은 내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다.

사진 몇장 찍고 바로 올라온 것은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중부내륙을 타고 3시간 반만에 집에 도착했는데, TV의 뉴스 속 화면에선 길게 늘어선 성묘, 나들이 차량들로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장면들이 연신 잡히고 있었다.

이번에 안동과 함께 경북도청 이전지로 결정된 예천은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고향이 발전하는 것도 좋지만 반면에 자꾸만 기억 저 너머로 애틋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예천에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라는 나름 유명한 자연명소가 있다. 차후 기회가 된다면 이곳으로 출사 계획을 세우고 싶다. 그리고 그때엔 정말 구석구석 마음 속의 고향을 잘 새겨놓고 오고싶다.

2008/09/10 02:09 2008/09/1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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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r.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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