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mm 무반동총

2009/11/13 17:14

웹서핑 하다가 어떻게 삼천포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서도 우연히 발견한 90mm 무반동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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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주특기가 '106-9', 바로 90mm 무반동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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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행군할 때 K2를 걸쳐 매고 완전 군장에 17Kg 정도의 무반동총을 올려놓고 힘겹게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수로서 처음 고폭탄 사격하던 날, 엎드려쏴 자세에서 숨죽이고 목표를 조준하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명중하면 휴가다!"

속으로 몇번을 되뇌며 호흡을 멈추고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발사. 잠깐의 짧은 정적 후에 고폭탄은 보기좋게 과녁을 빗나갔다. 그리고 엄한 맨땅에서 다시 "펑"하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_-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강한 후폭풍과 함께 튀어오른 흙먼지가 하이바며 전투복 위로 후두둑 떨어졌을 때의 실감나는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만 해도 90mm는 도태장비라 곧 사라질 거라 했는데, 찾아보니 1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저 도태장비 이름을 단 현역장비인가보다.


그냥 추억 한소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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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통기타를 잘 치는 한 친구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제안을 했었던 것 같은데, 서로 의기투합하여 친구는 작곡을하고 난 작사를 맡아 함께 만든 노래가 하나 있었다. 시(詩) 속의 사랑이라는 타이틀로. ^^

노래가 완성되고 그 친구가 직접 기타 반주에 부른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했었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대신 악보를 갖고 있어 미리 찍어둔 사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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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음치, 박치라 악보를 봐도 도통 알 수가 없지만 입을 열고 흥얼거려보면 아직도 대강의 음은 기억하고 있다. ^^


시(詩) 속의 사랑

거리를 나서면 아직도 그대 향기 가득한데 여기엔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네


눈을 감고 그리면 아직도 그대 모습 비치는데 내 마음 속엔

따스한 꿈들은 사라지고 노을진 슬픔으로 가슴은 떨리우네


나직히 들려오는 그대 속삼임에 살며시 눈뜨고 보니

미소짓는 그대 모습, 그러나 손끝에 헤어지는 환상이었네


시속의 시속의 사랑을 나누자던 우리의 약속은 어디에

눈물로 눈물로 흐려진 시간 속에 사랑은 사라져만 가네


하지만 하지만 잊지는 않을거야 지나간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걸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간직하리 우리의 사랑을 그대여


그 시절엔 이문세, 이승환, 변진섭, 신승훈 같은 가수들 위주의 발라드가 가요계를 평정하던 시기였다. 감성적이고 소녀적인 가사들이 주류였던 시기라서 그랬을까? 나의 가사도 실연의 아픔과 추억을 노래하고 있다고나 할까... ㅋㅋ

새벽에 쓴 편지는 붙이지 말라고 했다. 그 시절엔 편지도 많이 썼는데 실제로 붙이지 않은 편지도 적지 않았다. 새벽녘까지 잠못 이루다 쓴 편지를 다음날 읽어보면 편지지는 감상으로 젖다 못해 물이 뚝뚝 떨어질 판이었다. 말그대로 나에겐 이성에 눈뜬 시기였고, 사춘기였으며, '질풍 노도의 시기'였다. ^^

새벽에 쓴 편지와 유사하게 예전에 쓴 글을 읽다 보면 그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글 속에 담긴 유치하고 과장된 표현들과 극단적인 내용에 낯이 살짝 붉어지곤 한다. 이 노랫말(시 속의 사랑)도 마찬가지. 그래도 실제 노래를 부르면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P

'시 속의 사랑'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로,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가사의 유치함을 생각케 하기보다는 고교 시절의 추억과 낭만을 떠올리고 미소 짓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진 속 악보와 가사에는 그 시절만의 풋풋한 추억이 애틋한 여운으로 서려있다. 현재 내 모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엇이...

몇년전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만들었던 그 친구가 신촌 어딘가에 한의원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신촌이라면 내가 사는 곳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다. 그런데 연락처를 알아내어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했을 땐 기대와 달리 다소 어색하고 짧게 통화가 마무리되었었다. 세월이 너무 흘러서일까 그후로도 몇년이 지난 지금 역시 선뜻 연락하기가 망설여지는 건 왜일까? '가까운 날 한번 봐야지!'라고 했던 나의 진심은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되고 말았다.

짧은 가을이 지나가고 초겨울 첫추위가 기승떨고 있다. 올 겨울이 지나기전에 옛 친구를 한번은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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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0 08:30 2008/11/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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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담수화(海水淡水化) 설비라는 것이 있다. 물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97%를 차지하고 있는 바닷물을 이용해서 모자란 식수와 공업 용수 등을 만들어 내는 설비를 말하는데, 이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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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이 2001년 8억달러에 수주, 2003년 준공한 아랍에미리트(UAE) 후자이라 담수플랜트 야경

갑작스레 '해수담수화'라는 말머리를 던진 것은 이것을 주제로 블로그에 포스트 하나 올려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물부족'과 관련한 뉴스와 화두는 나에게 누렇게 해묵은 종이 한장을 연상시키는 촉매가 되기 때문이다. ^^

20여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아니면 5학년 즈음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미래에는 물 부족, 식수 부족으로 인류의 삶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식의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나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때 생각해낸 것이 오염된 물을 거대한 볼록 렌즈를 사용해 증발시키면 마실 수 있는 순수한 물(증류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멋진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종이에 자를 대고 열심히 그려낸 설계도(?)가 바로 이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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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못 진지하게 고민하고 만든 것이라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더 좋게 해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고이고이 간직해 놨던 것 같다. 나중에 철들고 나서도 오래되어 색이 바래버린 종이 조각을 보면서 버릴까말까 수차례 고민하다가 순수했던 그때가 못내 아쉬워인지 차마 버리질 못했던 것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

지금에 와서 볼 때 아쉬운 점으로 이 설계도는 과학적 상식을 가지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나 자신은 어슴프레 그때의 기억과 의도했던 바가 짐작이 가지만 말 그대로 '초딩'적 생각일 뿐이다. ^^ 초딩도 요즘의 빠르고 일찍 깨인 논리적 세대들과는 다른 초딩, 엄밀히 말하면 '국딩'이었던 시절이라고 하면 궁색한 변명일라나? ㅋ~

그림을 보면 지상과 지하를 양분하며 철관, 모터, 펌프, 필터, 대형 볼록 렌즈, 등등으로 구성된다. 왼편 아래의 '아궁이'는 볼록 렌즈로 물을 뎁히기 힘들 때의 보조 수단이었던 것 같다. ㅋㅋ 이것이 내가 이 그림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모두이다. 그림의 오른쪽 귀퉁이부터 시작해서 다시 오른쪽 귀퉁이로 끝나는 증류수 생성 과정의 전체 프로세스는 나만이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사고가 아닌 추억의 감성을 바탕으로! ^^

어찌됐건 난 20여년 전부터 미래의 물부족 사태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했었다! -_-)v

그리고 지금의 난 어떻게 하면 처자식 안굶기고 먹여살릴까에 대해서 하루하루 밥먹듯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범인류적인 원대한 지상과제에 대해서는 머리좋은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닳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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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5 08:48 2008/11/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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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책장을 정리하다가 보관함에서 오래된 수첩을 하나를 발견하고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수첩 커버에 끼여져있는 마당세실극장 회원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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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회원권은 1989년을 기록하고 있지만 기억이 맞다면, 덕수궁 옆에 자리하고 있던 마당세실극장과의 인연은 이때에서 몇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극장을 처음 찾은 것은 아마도 중학생 무렵이지 싶다. 얼마짜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우표를 얼마치인가 사서 보내면 연간 회원권을 20장(10장이었나?) 정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회원권이 있으면 연극 한편을 보는데 회원권 한장과 1000원 정도만 지불하면 되었다. 돈 없고 배고픈 어린 학생에겐 굉장한 혜택이 아닐 수 없었다.

덕택에 그시절부터 고교 때까지 그래도 아쉽지 않게 연극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오래되다보니 "님의 침묵", "뺑파전", 기타 마당놀이 정도만 기억난다. 특히 "님의 침묵"은 만해 한용운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이었는데 현재 영화배우로 잘 알려진 김갑수씨가 주연을 맡았었다. 몇년 후에 TV에서 김갑수씨의 낯익은 얼굴을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도 난다.

사실 많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모아 놓은 연극 팜플렛이며 영화 티켓 등을 쭉 버리지 않고 보관해왔었는데, 2005년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오면서 한동안 고민하다가 모두 버려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쉽다. ㅜ.ㅡ

살살 헷갈리긴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아마 생애 처음 본 연극은 마당세실에서 공연한 "보잉보잉(아마도 비슷한 제목)"이었던 것 같다. 소설가를 꿈꾸던 그때 연극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튼, 개발자로 밥 벌어먹고 사는 지금! 제대로된 문화 생활이라고는 애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컴퓨터를 켜고 맥주 한잔 곁들여 보는 영화 정도가 모두인 나에게, 새삼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회원권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예전의 마당세실은 현재 대학로로 이전한지도 오래되었고, 기존 자리엔 99년부터 제일화제세실극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90년대 중반에 대학로, 신촌 등지로 소극장들이 군락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았었는데... 마당세실도 소외되기 싫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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